[소확기업 탐방②] 콩이 메주가 되고 장이 되는 자연의 시간 ‘가을향기’
[소확기업 탐방②] 콩이 메주가 되고 장이 되는 자연의 시간 ‘가을향기’
  • 김현옥
  • 승인 2018.08.08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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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잇고 있는 아들 김재민(좌)와 함께한 박애경 대표
가업을 잇고 있는 아들 김재민(좌)과 함께한 박애경 대표

[옥천면=김현옥] 양평읍에서 옥천면 사나사로 가는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버스정류장 옆에 ‘가을향기’ 나무대문이 손님을 반긴다. 안으로 들어가면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담은 300여 개의 자연옹기가 땅과 사람과 산을 품고 제 스스로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은 사실 기다림의 음식이다. 하물며 요즘 같은 시대에 전통 장을 고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을향기 박애경 대표는 육순의 나이임에도 불혹으로 봐도 실례가 아닐 정도로 고운 얼굴이다. 아마도 이게 다 20여 년간 맨손으로 볏짚과 콩을 거두면서 자연과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인천에서 은행에 다녔던 박 대표는 1997년 귀농을 위해 강원도로 향하다, 길이 하도 막혀 지인 집에 하루 머물다 가려 했던 것이 지금까지 용천1리에 눌러 앉게 됐다. 평생의 꿈이 농부였던 남편을 따라온 첫 해, 남의 땅을 빌려 콩 두 가마 반을 수확한 게 장을 담근 계기였다.

고생해 거둔 콩이 아까워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고 장을 담았지만 막상 판로가 문제였다. ‘지인에게만 팔아도 생계는 되겠지’ 생각했는데, 장을 담을수록 재고만 쌓여갔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라 생계를 위해서 마을 작목반과 함께 애호박을 심었다.

장도 그렇듯 사람의 일도 하늘의 순리대로 움직이는 듯 했다. 애써 심은 애호박이 박스당 500원으로 떨어지자 인천 사는 지인이 두레생협에 가지고 가서 1만원에 팔아줬다. 그러다 이듬해쯤 폭우로 화천 애호박 대단지가 큰 피해를 보면서 가격이 7만원까지 치솟았다.

전통방식으로 띄우는 메주는 손이 많이 간다
전통방식으로 띄우는 메주는 사람 손 반, 그리고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 낸다

다른 농가에서는 납품을 꺼려하는데도 종전 가격을 유지하자 생협에서 된장을 납품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인연이 서로 신뢰로 이어져 2000년에 정식 상표등록 후 가마솥 12개에서 전통장을 생산하게 됐다.

농사시작부터 자연농을 고수해 왔기에 자연스레 2004년 대한민국 최초로 장류부문 유기가공식품인증을 받고, 2009년에는 유기가공부문 친환경농업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개인회사가 입점하기 어려운 신세계백화점 청담점에 납품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한 종지의 장이 만들어지기 까지 수고로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11월말 경북 봉화에서 2007년부터 계약 재배하는 유기농 콩을 5톤 정도 수매해 3톤 가량 장으로 내놓는다. 가마솥에 콩을 하루 200kg 가량 삶은 후 저온 건조기에 말려서 메주방에 띄운다. 이때 사용되는 볏짚도 성분분석을 마친 유기가공 인증한 것을 쓴다.

이듬해 3월말에서 4월초에 3,500장 가량의 메주를 꺼내서 볏짚을 털어내고 소금물을 풀어서 항아리에 담근다. 염도를 알맞게 맞춘 염수에 40~50일 가량 담궜다가 5월에 간장과 된장으로 가르기를 하면 얼추 사람의 일은 끝이 난다.

이때부터 발효 숙성을 거쳐 제품으로 나오기까지는 자연의 몫이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이어지면 장이 줄어들지만 이 역시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다. 약 2톤 정도는 청국장, 4톤은 된장과 간장으로 나와 소비자 밥상에 올라간다.

초창기 자연농을 시작할 때부터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
초창기 자연농을 시작할 때부터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

주변에서는 생산량을 늘리라고 재촉하지만 처음 마음 먹었던 대로 소규모 전통장을 고수할 생각이다. 요즘은 몇 해전부터 가업을 잇겠다고 아들(김재민)이 돕고 있어서 틈틈이 옷 공방도 운영 중이다. 5년 후쯤에는 건물 5동을 활용해 전통 장과 접목한 체험과 볼거리 공간으로도 꾸밀 계획이다.

박애경 대표는 “밤에 달빛에 비추인 장독대를 보면 어머니 품에 안긴 아이들처럼 포근한 마음이 든다”면서 “처음 이 동네에 찾아왔을 때의 마음처럼 오롯이 100년 명품장을 만드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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