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 직업 군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시집가는 길에서 만나는 가족’
논산훈련소 직업 군인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시집가는 길에서 만나는 가족’
  • 김현옥
  • 승인 2018.09.30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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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소재 건양대학교 건양회관 전경
충남 논산시 소재 건양대학교 건양회관 전경

[논산시=김현옥] 지난 29일(토) 오전 11시 30분부터 2시간 가량 충남 논산시에 있는 건양대건양회관 4층에서 직업 군인들을 대상으로 ‘시집가는 길에서 만난 가족’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시가 제 인생의 중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시집을 적지 않게 읽고 소개를 했지만 강의를 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몇 번이나 강의안을 수정하고 연습했는데, 결국 자신이 걸어왔던 삶 속에서 얘기를 풀어내는 것이 공감을 받는 것 같더군요.

수강생들이 인근 논산훈련서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는 직업군인들이라서 더욱 기대가 컸고 흥미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전방입소해서 배운 12사단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때 철책선에서 북한에서 들려오던 정태춘의 ‘시인의 노래’에 대한 감흥을 들려줬습니다.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 이병임 교수가 강사를 소개하고 있다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 이병임 교수가 강사를 소개하고 있다

또 얼마 전 새로 바뀐 국방부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논산훈련소를 방문해서 병사들의 의식주를 점검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습니다. 지금 훈련병들은 30년 전 배가 고파서 허기에 떨던 우리 세대가 아니기에 배를 채우는 밥보다는 사람과 소통하는 ‘마음의 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외톨이로 살고 개인주의가 팽배한 훈련병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시집 만큼 좋은 선물이 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국방부장관이나 훈련소장이라면 ‘마음식당’ ‘마음PX’ 등을 만들어서 신병들이 청춘을 살아갈 힘을 불어넣겠다고 말했습니다.

강의는 시를 읽지 않는 사회는 병들어 가는 사회라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돈이 되지 않기에 시인으로서의 삶은 고난이죠. 시집 베스트셀러가 1천부인 상황에서 누가 시를 쓰고 시인이 되려 하겠습니까. 소설 베스트셀러 1만부의 10분의 1 수준이니 시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있죠.

박철 박형준 허수경 고영민 정양 시인을 소개하면서 동명이인인 연예인 위주의 검색노출을 하고 있는 네이버의 돈벌이 위주의 콘텐츠 관리도 비판했습니다. 한해 5조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면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당대의 문학인들을 외면하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합니다.

'시집가는 길에서 만난 가족' 강의를 하고 있는 김현옥 강사
'시집가는 길에서 만난 가족' 강의를 하고 있는 김현옥 강사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김춘수의 ‘꽃’을 통해서 이름 없이 살다가 가는 우리의 부모님들을 위해 자서전을 만들어드리자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길가에 핀 꽃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으로 기억해주는 일이기 때문이죠.

강의는 ‘봄~, 사랑이 움트는 소리(자녀)’에서 사랑을 놓치다(윤제림), 말랑말랑한 힘(함민복), 제비꽃여인숙(이정록), 목련꽃브라자(복효근), 그리고 ‘여름, 삶의 행복한 여행(부부)’에서는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이병률), 춤(박형준), 영진설비 돈갖다 주기(박철), 악어(고영민)를 소개했습니다.

‘가을, 맨발로 서 계신 당신(아버지)’에서는 거미(이면우), 소주병(공광규), 맨발(문태준), 진흙눈동자(나희덕)을 읽고, ‘겨울, 희망으로 품은 발자국(어머니)’에서 감(장석남), 꼭지들(이윤학), 늦게 온 소포(고두현), 호랑이 발자국(손택수)과 같이 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주말을 이용해 직업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논산훈련소 부사관님들
미래를 위해 주말을 이용해 직업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논산훈련소 부사관님들

인류가 시작한 이래 2,000억 명이 탄생하고 소멸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1,000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런 은하계 1,000억 개가 모여서 우주로 불려진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 속에서 인간의 존재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요.

장석남 시인의 ‘살구를 따며’에 나오는 “내 서른여섯 살은 그저 지나간 어느 저녁 살구를 한 두어 되 따서는 들여다보았다고 기록해두는 수밖에는 없겠네”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인생의 절정의 순간 시를 읽으며 내가 갈 별자리를 예약해 두는 것도 행복하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봄인가 싶었던 이야기가 종착역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시집열차의 첫 운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시집살이와 함께 행복한 계절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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