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일기①]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데도 없는 ‘양평적폐’
[양평일기①] 어디에나 있으면서 아무데도 없는 ‘양평적폐’
  • 김현옥
  • 승인 2018.10.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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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양평에 터를 잡은 지 만 2년, 양평을 알기 위해 통신사 주재기자로 일한 지 1년이 다 돼간다. ‘자연인’으로 살기 위해 자리잡은 양평의 동쪽 끝인 청운면에서의 삶은 대체적으로 만족이다. 청정 자연에 하루에 지나가는 차가 손에 꼽을 정도로 조용한 곳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양평의 마을을 알기 위해 12개 읍면을 찾아 다니며 20여 개 마을을 탐방했다. 봄부터는 학교탐방을 위해 꿈의학교와 체인지메이커스쿨 20여 곳을 취재했다. 그리고 다양한 단체와의 만남을 통해 점점 양평의 속살을 알게 됐다.

6.13 선거를 치르면서 ‘양평적폐’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기자로서 매일 군청 브리핑룸에 출근하면서 본 공무원, 현장에서 만난 기업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들을 종합하면 적폐는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적폐 주체가 자신이 적폐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고위공무원들의 안하무인 태도, 그것을 지적하면 되레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 이는 분명히 지난 10여 년간 ‘군민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행정가가 우두머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어느 공무원에게 명함을 주는데 한 손으로 받고, 그것을 지적하면 반말로 응대하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과했으니 됐지 않냐”는 모습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항의하는 기자한테 이럴 정도면 일반 군민에게 어떻게 응대했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양평 적폐의 원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결론은 변변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관청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라는 데 생각이 모아졌다. 또 하나는 적폐척결을 외치는 시민단체조차 그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선7기 자치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소야대 군의회에서 9월 10월 두 번에 걸쳐 회기를 진행했다. 한번은 추가예산안 심사와 지난 3년간 행정감사였고, 또 한번은 조례안 상정과 현장실사였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양평희망정치시민연합(위원장 최갑주) 외에는 어느 단체도 기자실에 찾아와서 자료를 열람하거나 회의장에 와서 의원들에게 궁금한 사안을 묻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적폐로 규정한 지난 3년간 자료를 찾아보고 분석하지 않으면서 어찌 적폐청산을 말할 수 있을까.

양평군에서 가장 큰 시민단체는 양평경실련이다. 이 단체 주관으로 시민단체연석회의가 만들어졌고, 여기서 군정개혁위 설치를 강하게 요청했다. 민선7기에서도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향적인 기구를 운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리’나 ‘기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군정을 감시하는 눈과 군민 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조례안, 행정감사 등에 대한 분석과 대응이다. 이게 갖춰지지 않고서는 백날 군정개혁을 외쳐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인근 타 시군의 시민단체 감시 활동을 눈 여겨 볼 일이다.

시민단체는 남들이 다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감히 할 수 없는 일’에 매진해야 호응을 얻는다. 그런 다음 언론에 non GMO 조례안, 석면논란, 은혜재단, 양평공사를 얘기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신뢰는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흔히 말한다. 이 말은 시민단체는 물론 양평군 민선7기, 언론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문구다. 지금 뭐가 제일 문제고,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군민들의 개혁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양평 적폐는 어디에나 있지만, 들여다 보면 아무 데도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잘못을 들춰보고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없이는 우리 모두 공동정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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