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방문 ③] 그림 속 숨은 꽃 보는 즐거움 ‘백하헌 나들이’
[불쑥방문 ③] 그림 속 숨은 꽃 보는 즐거움 ‘백하헌 나들이’
  • 김현옥
  • 승인 2018.12.05 11: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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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하헌을 불쑥 찾은 사람들
백하헌을 불쑥 찾은 사람들

[지평면=김현옥] 재인2년 음력 시월 스무아흐레날 양평성에서 퇴청하려는데, 수곡궁궐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는 전갈이 왔다. 사모관대 다시 갖추고 어부인을 황급히 불러 말에 올라타니 이제 막 초경이 넘은 시각이다.

성문을 벗어나자 벌써 초저녁 달이 높게 솟았고,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었다. 양평성에서 창대리 지나 공세리까지 10리, 부리까지 10리, 내리 향리 거쳐 궐 앞까지 10리 도합 30리(12km)를 달려왔다. 역참에 말을 대고 궐에 기별을 재촉하니 잠시 후 백하헌으로 입궐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한끼 정갈한 밥상
한끼 정갈한 밥상

문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읊조리니, 다시 안에서 “마마 전 삼보 앞으로 들라” 이른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 굽혀 예를 취하는데 마마께서 친히 손을 잡으시면서 “추운데 먼 길 오시었소” 하신다. 이분이 바로 한끼 음식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는 혜경궁 정씨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식탁에 꽃이 피었다. 호박죽에 가평에서 온 도토리묵, 제갈량 김장속과 두부, 쫄깃한 고기구이, 프랑크소시지 곁에 새싹채소가 재잘거리는 밥상이다. 잡곡밥에 맑은 콩나물국, 섞박지와 배추지 옆에 마당에서 주워온 작은 돌이 수젓가락을 공손히 받치고 있다.

그릇에 맥주를 붓자 매화꽃이 피었다
그릇에 맥주를 붓자 매화꽃이 피었다

정갈한 음식 속에는 여름날 벌이 들락거리던 호박꽃, 꼬마전구처럼 가을 숲을 밝히던 도토리, 폭염을 이기고 스스로 소금사막에 든 무와 배추의 소리가 들린다. 도토리 등불, 소금 무와 배추 모두 사람의 손길을 거쳐 묵꽃과 소금꽃으로 식탁을 환하게 밝혔다.

이윽고 보리술을 부은 그릇에 매화꽃이 피자, 참다 못한 대구막창이 “이런 꽃 막장은 처음”이라면서 통돌이 오븐에서 “집에 가자”며 아주 절규를 한다. 한바탕 소란에도 아랑곳 없이 난로에서 고구마가 익어갈 즈음 얘기꽃이 꽃봉오리를 활짝 틔웠다.

후식으로 나온 고구마와 딸기
후식으로 나온 고구마와 딸기

백하헌은 음식 차림을 통해 작품과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집 주변의 풀과 꽃, 나뭇가지, 열매, 돌멩이 등이 제 스스로 식탁과 집안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전시장에 머무는 내내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자 양평살이의 행복이다.

오는 6일(목)까지 김병국 도예가, 황재종 작가, 백중기 작가, 정승호 작가의 작품들이 국화꽃 목화꽃 산수유 열매와 산새공방 손영희 작가의 천 조각에 둘러싸여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궐문을 닫는다는 순라꾼의 나팔소리가 들리자 꽃 향기 머금은 회령접시를 품고서 궁궐을 나섰다. 집에 같이 가자며 발을 동동 구르는 대구막창을 떼놓기가 여간 쉽지 않은 하루였다.

통돌이 오븐에서 막 나온 막창
통돌이 오븐에서 막 나온 막창

 

<작품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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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숙 2018-12-05 23:24:19
글쓴이님 덕분에
백하헌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