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는 길 ③] 사막에 꽃과 새싹을 틔우기까지 ‘울지도 못했다’
[시집가는 길 ③] 사막에 꽃과 새싹을 틔우기까지 ‘울지도 못했다’
  • 김현옥
  • 승인 2018.12.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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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 시인이 25년 만에 펴낸 시집 '울지도 못했다'(사진출처=문학과지성)
김중식 시인이 25년 만에 펴낸 시집 '울지도 못했다'(사진출처=문학과지성)

김중식 시인의 <황금빛 모서리>(1993.문지)를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소개 글을 쓸 때 ‘살아있는 요절시인’이라고 불렀다. 첫 시집이 유작이 되는 많은 등단 시인들의 전철을 밟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름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사라진 그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이른 나이에 “철학적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했다”며 철학을 떠난 비트겐슈타인이거나, 아니면 현란한 비상을 접고 아내의 등과 아이들의 발을 간질이며 살아갈 것이라는 소문 등등.

그런 그가 25년 만에 <울지도 못했다>(2018.문지)를 들고 나타났다. 궤도에서 이탈한 자가 한 획을 긋거나 자유롭다고 했지만, 결국은 세상의 끝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 때’와는 다를까 궁금해졌다.

“미친 시대가 하필 우리의 전성기였으므로/돌아버리지 않아서 돌아버릴 것 같았던/속으로 화상 입은 청춘이었으므로”(‘자유종 아래’ 중).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아무 짓도 안 했는데/서로가 서로를 혹사하는 삶이/더(러)워지는 느낌”(‘지구온난화’ 중)

화상 입은 청춘을 식히고 더러운 세상을 피해 설산과 사막여행을 다녀온 듯 하다. 여기서 돌아오고, 떠나야 할 ‘때’를 깨달았으리라.

“가면 나올까/해 떨어지면 집으로 가는 게 맞다/돌아갈 곳이 없다면/밤새 노는 게 아니라/돌아버리는 것”(‘만신전’ 중). “여기는 아닌데 거기는 길까마는/갈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는 게/사막의 유일한 교통신호다”(‘사막 건너기’ 중)

온갖 역경을 디디고 바람처럼 살다가 이십여 년 전에 세운 “외롭다 어느 날부터/사람을 벗어나면 외롭지 않다”던 말을 다음과 같이 갈아치운다. “살을 째는 각질을 달고 여기까지 왔는데//사막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사람 없는 곳이 사막인 거라서”(‘바람의 묘비명’ 중)

그리하여 발바닥을 핥으며 땅을 파서 만든 거대한 휴화산 앞에서 뜨거운 삶의 유황 냄새를 맡게 된다.

“황무지라 하지 마라/얼마나 깊이 파보았느냐/가장 뜨거운 지표면은 가장 낮은 곳이다//바위까지 녹여낸 삶의 압력밥솥/낙타의 혹처럼 나의 짐이 나의 양식이었으니/발바닥을 핥는 사랑이 가장 뜨거웠을 것이다”(‘휴화산’ 중)

마침내 화산이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막에 꽃이 피고, 시인은 지평선 꽃 받침대를 받친 채 아이가 사막바다를 건너가는 것을 저만치서 바라본다.

“사막에서는 장미 한 송이로/에버랜드 장미축제를 연다/지평선이 한 송이를 위한 꽃받침이다”(‘꽃’ 중). “버터플라이 영법으로 수면을 때리는 딸아이의 어깨가 새싹 모양/돌고래 꼬리 같다//나비가 고래 등 타고 바다를 건너려는 듯”(‘바다 건너기’ 중)

깃털과 밀납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이카로스처럼 태양의 흑점까지 가려다 번번히 실패를 겪었던 시인은 이제 꽃과 새싹을 틔우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자 한다. 그것을 말하기까지 오랫동안 울지도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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