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면=김현옥]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어제는 예보 없이 눈이 내렸죠. 시사모 11번째 모임은 유종인 시인의 <교우록>을 읽었습니다. 봄에 버들가지 능청능청 도발하거나 겨울에 난데없이 눈 내릴 때 읽기 좋은 시집이죠.
갑작스레 입원했다가 퇴원하신 손소영 님이 3주 만에 오셔서 반가운 얼굴 보여주셨습니다. 또 호도과자도 사오시고요. 저도 시골에 갈 때 휴게소에서 꼭 호도과자 사가는데, 이름을 효도과자로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광식 님은 짤릴 게 걱정돼서 아픈 몸을 이끌고 4주 만에 오셨습니다. 설마 창립멤버를 어떻게 하겠습니까(진실 혹은 거짓?). 김장하느라 너무 무리를 하셨다고 하네요. 저도 그간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에 용문교회 앞 꽈배기를 좀 사왔습니다. 찹쌀 반죽이 아주 반 죽이는 집이죠.
거기다 몽실님이 원래는 약속이 있어서 불참하신다고 했는데 정말 선물처럼 오셨습니다(놀라게 하려고 설계 들어가신 거 아니죠). 지난주 가게 준비하느라 한 주 빠졌는데 도저히 시를 읽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어서 도망치듯 왔다고 합니다. 성욕과 시욕 중에 시를 택하겠다고 하시는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 꽈배기아~
사람이 선물이 돼서 특급 택배로 배송이 되는 곳, 시사모는 이런 곳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친구처럼 그간 안부를 묻고 재미난 얘기에 함박웃음을 짓는 곳이죠. 그래서 오늘 읽은 <교우록>이 더 입에 찰싹 달라붙었습니다.
시집을 안 읽고 오신 분이 많아서 제가 ‘류하백마도’와 ‘흐린 날의 화조도’를 추천해 드렸습니다. 시조로 등단한 시인답게 옛 그림을 표현해내는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반석 님은 ‘칼날’, 손소영 님은 ‘어떤 독서’, 서학조 님은 ‘벼루를 깎다’, 한광식 님은 ‘겨울저녁’을 읽었습니다.
아무튼 유종인 시인은 벼루, 가시, 못, 바늘, 뼈 등 뭔가 단단한 것을 갈아서 자연을 붓 삼아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미루나무 흔들리는 모습을 하늘에 붓을 긋는 모습이라고 했을까요.
또한 표제시 ‘교우록’에서 말한 것처럼 아직 내리지 않은 눈, 아직 읽을 수 없어서 입으로 빨아먹어야 하는 문자(‘어떤 독서’)야 말로 가장 순수에 닿은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벼루를 가는 마음으로 오동나무 한 채로 시집갈 딸아이를 위해 팥죽을 휘휘 저어주는 아비의 마음(‘여울저녁’)을 충분히 헤아리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주는 신현림 시인의 <해질녘에 아픈 사람>입니다. 이후 양평시사모 송년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모은 회비로 음식도 준비하고 자리를 옮겨서 산새공방 구들방에서 다리와 허리 지지면서 따뜻한 하루 보내려고 합니다. 마음은 부담 없이, 양손은 무겁게 오시면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