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사모 건축기행②] 자연에 앉혀진 콘크리트 꽃구경 ‘원주 뮤지엄SAN’
[양평시사모 건축기행②] 자연에 앉혀진 콘크리트 꽃구경 ‘원주 뮤지엄SAN’
  • 김현옥
  • 승인 2019.02.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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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공원에서 함께 모인 건축기행 회원들
박경리문학공원에서 함께 모인 건축기행 회원들

양평시사모 두 번째 건축기행은 지난 13일(수) 원주에 다녀왔습니다. 박경리문학공원, 원주중앙전통시장, 뮤지엄산 코스로 12명의 회원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원래는 문학공원 대신 소금산 출렁다리를 가려고 했는데 변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평역에서 정혜경 손소영 님을 태우고 오전 10시 30분쯤 박경리문학공원에 도착하니 벌써 손영희&서학조 부부, 이충순&뤼디거(독일) 부부, 정하저, 지혜인, 한광식, 함수일, 혼다 토모쿠니(일본) 님이 와 계셨습니다.

회원들이 박경리문학공원에서 건축기행 일정 설명을 듣고 있다
회원들이 박경리문학공원에서 건축기행 일정 설명을 듣고 있다

#1 절대고독 속에서 완성한 대하소설 ‘토지’

서로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간단하게 일정을 설명하고,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4층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일생을 담은 영상을 관람했습니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장장 25년 동안 <토지>를 집필하기 까지 선생의 아픈 가족사와 그것을 품어 안아준 원주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이었습니다.

선생이 머물렀던 단구동 옛집은 토지 4~5부를 완성하기까지 19년 동안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는 “절대 자유 속에서 창작이 가능한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외로워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피를 토하며 <사기>를 썼듯, 선생도 스스로를 단구동에 위리안치 시키고 절대고독 속에서 작품을 마무리했습니다.

실제로 선생은 <토지> 완간 출판기념회를 단구동 집에서 열면서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러다 보니 살구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 가지를 치다가 만난 말벌에게도 “미움이 없다. 날파리 하나도 하나의 우주다”라고 하십니다. 이런 생명에 대한 사랑, 밀도 높은 연민이 문학공원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장소는 원주중앙전통시장 입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신혼부부 분식집에서 돈까스 떡볶이 쫄면 잡채밥 등을 나눠먹고, 2층 청년들의 공방을 구경했습니다. 얼마 전 화재의 흔적이 다 가시지 않았지만, 젊은이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원주중앙전통시장 2층 청년공방을 둘러보는 회원들
원주중앙전통시장 2층 청년공방을 둘러보는 회원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뮤지엄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외곽도로를 타고 오커빌리지 산 정상 즈음에 다다르니, 하얀 벽을 따라 회전해서 오라고 주차장 화살표가 안내합니다. 그러자 나타나는 매끈한 콘크리트 주차장과 그 너머 아득한 산봉우리들. 지난해 11월 찾았던 100만평 규모의 산청 동의보감타운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뭐랄까. 우리의 건축물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반면, 안도 다다오로 대표되는 일본의 건축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면 다음 장면을 펼쳐주는 듯 했습니다. 마치 헬륨가스만 잔뜩 넣어 부풀린 우리 과자와 포장 안에 또 포장을 하는 일본 과자를 보는 듯 하다고 할까요.

#2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가 자연에 ‘앉혀지거나 안치거나’

아무튼 오후 2시부터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아 약 1시간 반에 걸쳐 웰컴센터부터 180그루 자작나무가 반기는 플라워가든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워터가든과 제임스터렐관은 수리 중이어서 관람료를 20% 할인해 주었습니다.

사각 삼각 원형으로 각각 대지와 사람, 하늘을 상징하는 뮤지엄 본관 외부를 거쳐 지극히 한국적인 느낌을 살린 파주석으로 장식한 내부 페이퍼 갤러리. 쏟아지는 겨울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걷는 즐거움이란 현재로선 뭐라 설명할 ‘방뻡’이 없습니다.

큐레이터 안내로 뮤지엄산을 둘러보고 있다
큐레이터 안내로 뮤지엄산을 둘러보고 있다

건물 한쪽 귀퉁이에는 고대 고분처럼 돌 무더기를 쌓아놨는데, 직선으로 이뤄진 공간에 흐트러짐을 줌으로써 건물에 숨통을 틔게 하려고 한 것이랍니다. 스톤가든과 상설 전시를 하는 청조갤러리는 시간 관계상 둘러볼 수 없어 각자 숙제로 남겨뒀습니다. ‘안도의 숨통’을 틔워줘야 하니까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흔히 ‘노출 콘크리트로 쓰는 시’라고 얘기합니다. 처음에는 콘크리트가 어떻게 시가 될까, 저 딱딱한 것들이 어떻게 방문자들에게 감흥을 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는데 뮤지엄을 둘러보고 난 뒤 싹 사라졌습니다.

카페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면서 동행한 건축가 서학조, 함수일 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콘크리트에 빛이 반사되면 따스함마저 느껴진다”던 안도의 말이 맞는구나 확인했습니다. 흔히 아파트가 주는 딱딱함으로 인해 콘크리트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 인식이 친환경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숨어서 타인을 불편하게 했던 기둥 혹은 고정관념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면서 발생하는 ‘상대적 끌림’이라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본 모습을 노출한 재료들은 어디에 두어도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뮤지엄산 카페테라스에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장석남 시인의 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회원들
뮤지엄산 카페테라스에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장석남 시인의 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회원들

얘기 중에 독일 쾰른에 거주하면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갤러리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이충순 님이 서학조 님이 말한 “안도의 건축은 주변의 자연에 건축물을 앉히려고 한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이충순 님은 이것을 “건축이 점점 조각으로 분화해 자연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것을 어쩌면 우리네 어머니들이 부엌에서 밥을 ‘안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 박경리의 ‘우리들의 시간’과 장석남의 환한 통증들

이번에 준비한 시집은 장석남 시인의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입니다. 그에 앞서 박경리 선생이 쓴 ‘우리들의 시간’을 정혜경 백하헌 관장님이 읽고 종교적 성직자 느낌이 난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어 이충순 님이 장석남의 ‘길’, 혼다 님이 ‘분꽃이 피었다’, 제가 ‘살구를 따고’, 서학조 님이 ‘배를 매며’, 지혜인 님이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을 읽었습니다. 함수일 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를 낭송하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시인은 “겨울은 가면서/매 새벽마다/이 깨끗한 절망을/가져가라 했던가/꽃씨처럼/꽃씨처럼”이라고 노래합니다. 새벽 고요를 가져오고 절망을 가져가는 겨울이라면 정말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할 듯 합니다. 저물면서 오는 분꽃, 별자리의 행렬이 담긴 살구씨를 맘껏 들여다 볼 수 있는 계절을 기다리며 말이죠.

회원들이 양동면 계정횟집에서 송어회와 함께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회원들이 양동면 계정횟집에서 송어회와 함께 못다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저녁은 양동면 계정횟집에서 싱싱한 송어회로 배를 채웠습니다. 여기다 원주시장에서 사온 꽈배기, 정혜경 관장님이 가져온 여주 딸기로 입가심을 했습니다. 다들 음식을 맛있게 먹고 수다를 떨며 맘껏 웃은 하루였습니다.

건축기행 세 번째 모임은 3월 13일(수)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DDP로 떠날 예정입니다. 그 안에 눈이나 비라도 내리면 손바닥을 펴서 들여다보거나 가슴 께를 만져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우주의 씨방 속에서 머무르는 좌표를 알 수도 있을 테니까요.

<건축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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