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사모 스케치 20] 뻘 속에서 삶의 수평 잡아주는 ‘말랑말랑한 힘’
[양평시사모 스케치 20] 뻘 속에서 삶의 수평 잡아주는 ‘말랑말랑한 힘’
  • 김현옥
  • 승인 2019.04.20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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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길 마다하고 '시침'을 맞으러 산새공방에 모인 시사모 회원들
벚꽃길 마다하고 '시침'을 맞으러 산새공방에 모인 시사모 회원들

[용문면=김현옥] 거의 한달 만에 모임을 열어서인지 낯설면서도 반가움이 더한 날이었습니다. 이매화, 지혜인, 이반석, 손영희, 서학조, 신교진, 손소영, 그리고 저까지 8명이 함민복 시인의 <말랑말랑한 힘>과 함께 물컹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바쁜 일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이매화 님이 먼저 ‘길’을 읽었습니다. 양평에서 만난 동갑내기 오랜 친구를 잃은 마음을 “식물들은 살아온 몸뚱이가 가본 길이다/그도 죽어 길이 되었는지/골목길에 검은 화살표로 이정표로 남겼다”는 짧은 시로 대신했습니다.

지혜인 님은 ‘뻘’을 읽고 어렸을 적 섬진강변에 살면서 학교에서 강가로 진흙을 캐러 갔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함민복 시인을 무척 좋아하는 이반석 님은 시 두 편을 읽어야 직성이 풀리겠다며 욕심을 냈습니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서 노자의 도덕경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자칭 빈집 전문가인 손영희 님은 ‘폐가’를 읽으면서 개군면 어느 오래된 집에 갔다가 장독대가 놓인 마당 한가운데에서 오디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오솔길로 이어지는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신교진 님이 폐가는 강변에도 많다며 강에서 건져 올리는 쓰레기의 잔해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매화 님이 먼저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길'을 읽었습니다
이매화 님이 먼저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길'을 읽었습니다

자연스레 대화의 중심이 양평의 환경, 교육, 교통, 도시재생으로 옮겨갔고, 마침내 군수님도 초청해 같이 모임을 하자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서학조 님은 ‘섬’(“물울타리를 둘렀다/울타리가 가장 낮다/울타리가 모두 길이다”)에서 건축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문학적 상상력에 감탄했습니다.

손소영 님은 ‘죄’를 읽으며 최근 진주사건 등 사회의 흉흉한 일들에 대한 걱정을 했습니다. 거기다 물리적 위해 만큼 심각한 것이 ‘말의 흉기’라는 데도 수긍했습니다. 신교진 님은 ‘부부’를 읽으면서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찾는 인생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물고기’(부드러운 물/딱딱한 뼈//어찌/옆으로 누운 나무를/몸 속에 키우느냐/뼈나무가 네 모양이구나/비늘 입새 참 가지런하다//물살에 흔들리는/네 몸 전체가/물 속/또 하나의 잎새구나”)의 몸으로 ‘나를 위로하며’(삐뚤삐뚤/날면서도/꽃송이 찾아 앉는/나비를 보아라//마음아”) 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말랑말랑 혹은 물컹물컹하게 살고 계신가요
말랑말랑 혹은 물컹물컹하게 살고 계신가요

뜨거운 태양 아래 과속으로 지어지는 수직의 아파트 속 벼랑 끝 삶에서 잠시 브레이크를 밟고 그늘과 뻘 속에서 수평을 잡아주는 물고기와 나비의 어설픈 듯한 유영을 들여다 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단단한 시멘트 대신 말랑말랑한 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함부로 만들지 않는 물컹물컹한 깊은 말씀”이니까요. 뻘에 발이 빠지면 속도는 나지 않겠지만, 생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발을 디뎌야 할지 화살표 하나는 남기지 않을까…

이것이 벚꽃 흐드러진 계절에 꽃침 대신 ‘시침’을 맞는 이유가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역시 김포 쪽 봄 풍경을 잘 묘사해주신 하종오 시인의 <무언가 찾아올 적엔’을 읽겠습니다. 모두들 말랑말랑한 봄을 맘껏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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