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사모 스케치21] 올망졸망 모여 털실처럼 사는 ‘제비꽃 여인숙’
[양평시사모 스케치21] 올망졸망 모여 털실처럼 사는 ‘제비꽃 여인숙’
  • 김현옥
  • 승인 2019.05.18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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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면 몽실면당 2층에서 열린 시사모 모임
옥천면 몽실면당 2층에서 열린 시사모 모임

[옥천면=김현옥] 어느 모임이든 시간이 지나면 처음 마음먹었던 것들이 조금은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지난번 하종오 시인의 <무언가 찾아올 적엔>을 읽었을 때가 그랬습니다. 회원도 몇 명 오지 않은데다 흥이 나지 않아 처음으로 후기도 쓰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산새공방 주인 내외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애초 생각대로 장소를 옮기면서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지난 3월 옥천면에 몽실면당을 열고 쉬지 않고 달려온 김동운 사장님께 시의 별미를 맛보게 해주고도 싶었습니다.

몽실면당 2층에 도착하니 양평의 멋쟁이 서학조 교수님께서 먼저 와 계셨습니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오는데 아카시아 향이 그렇게 좋았다고 합니다. 이어 이반석, 한광식 님이 오시고 몽실면당 부부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정록 시인의 <제비꽃 여인숙>은 올망졸망한 것들이 서로 모여서 기대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 입니다. 한광식 님이 먼저 ‘제비꽃 아래’를 읽고 문장 속 ) ) ) 표시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아마도 제비꽃 모양이거나 누군가를 감싸 안는 반달 같은 손이 아닐까 해석하고 싶습니다.

봄 산길을 걷다가 제비꽃이 예뻐서 뽑아다 자기 집에 옮겨 심어 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하고 시들어 죽지 않던가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토양 탓도 있지만, 이것은 시선의 문제입니다. 한적한 오솔길에서 마주친 경외감과 집안의 제비꽃이 주는 감흥이 같지 않을테니까요.

오랫만에 시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 몽실면당 김동운 사장님
오랫만에 시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 몽실면당 김동운 사장님

얘기가 돌고 돌아 입양 문제까지 나왔습니다. 예전 해외여행이 많지 않던 시절 입양 가는 아이들을 해당 국가에 데리고 가는 사람에게 항공권 등을 입양단체에서 지원해줬다고 합니다. 엄마 품을 떠나 낯선 나라로 가는 젖먹이 아기의 비애는 아랑곳 않는 비열한 마케팅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어린 것들의 슬픔을 김동운 님이 ‘아름다운 녹’을 통해서 따스하게 감싸 안아 줬습니다. 철사 옷걸이를 물어와 까치집을 짓고 털실처럼 아늑한 품을 내주는 어미새의 마음이 모든 입양인들에게 고루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학조 님이 생을 마친 나무의 혀로 표현된 ‘주걱’을 읽자, 구민진 님이 목수가 깎아낸 대팻밥인 ‘나무 기저귀’를 벗겨내고 나무집의 옷을 입히는 풍경을 읊었습니다. 이어 이반석 님이 핫도그에 꽂힌 ‘나무젓가락 단청’을 통해 하찮은 것에서 발견하는 고행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모서리의 힘’을 다 같이 읽으면서 “겉은 둥글둥글 따스해야 하지만/속으론 모서리의 힘을 갖고 있어야지”라는 문장에 공감했습니다. 삐딱한 화장실 모서리를 보면서 똥과 삶의 중심을 찾는다면, 모퉁이는 그런 자신을 숨어서 오롯이 바라보게 하는 공간인 듯 합니다.

몽실식당 안주인 구민진 님(좌)과 '양평어울림' 이라는 사업을 새로 시작한 한광식 님(우)
몽실식당 안주인 구민진 님(좌)과 '양평어울림' 이라는 사업을 새로 시작한 한광식 님(우)

지금 사는 것이 힘들지라도 겨울 이기고 옹기종기 피어나는 제비꽃처럼 서로 위로하며 삽시다. 까치도 철사를 물어와 새끼들을 위해 깃털을 입혀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사람의 일은 그보다 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비꽃 여인숙에서 부담 없이 주무시면 가을 쯤에는 <쑥부쟁이 하숙집>(안도현)에서 방귀 뿡뿡 뀌며 키득거리는 재미난 계절이 올 것입니다. 다음 주는 장소를 바꿔서 강상면 모들카페에서 모임을 할 예정입니다. 지평면 송현리에서 살았다는 고형렬 시인의 <김포 운호가든집에서>를 읽습니다.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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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오신 멋쟁이 서학조 교수님
'나무젓가락 단청'을 읽고 있는 이반석 님
'나무젓가락 단청'을 읽고 있는 이반석 님
몽실면당 2층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몽실면당 2층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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