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방문⑧] 캘리로 새긴 천년의 그리움 ‘손영희 작가, 대구 전시회’
[불쑥방문⑧] 캘리로 새긴 천년의 그리움 ‘손영희 작가, 대구 전시회’
  • 김현옥 기자
  • 승인 2021.05.28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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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아버지'
작품 '아버지'

[경강일보=대구] 김현옥 기자 = 전시장에 들어서면 ‘아버지’라고 쓴 큰 글씨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 밑에는 “아시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라고 작게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옷 칠 된 단단한 종이 위에 새겨진 <아버지> 글씨에서 다들 멈춘다. 그 아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시 두 편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떤 이는 낭송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말 없이 눈물을 짓기도 한다.

문득 “비단 오백 년 종이 천 년을 증명하듯/우리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는 천 년을 견딘다는데/그 종이 위에 금니은니로 우리 사랑의 시를 남긴다면/눈 맑은 사람아/그대 천 년 뒤에도 이 사랑 기억할 것인가”라고 노래한 정일근 시인의 ‘감지의 사랑’이 떠올랐다.

작품 설명 중인 손영희 작가(우)
작품 설명 중인 손영희 작가(우)

그렇다. 손영희 작가는 종이 위에 한 땀 한 땀 천년의 사랑을 바느질 하는 사람이다. 공교롭게도 작가가 좋아하는 노래도 부활의 ‘천년의 사랑’이다. 이렇게 천년을 기록하고 싶은 작가에게 아버지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의어서 기억이 없어요. 제게 아버지는 사실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뜻한다고 봐도 돼요”

작가는 애써 이렇게 설명했지만 전시장 곳곳에 놓인 의자는 분명 평범한 아버지의 존재를 상징한다. “낮게 해지는 저녁/작은 의자에 휘어진 못처럼 앉아있던 아버지/얼마나 많은 신음을 석양으로 넘기셨나요”라고 쓴 시가 이를 증명한다.

작품 '하피'
작품 '하피'

또 한쪽 벽에는 ‘하피, 노을빛 치마에 그리움을 담다’라는 붉은 천에 뜨개질로 새긴 하얀 글씨를 만날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시절,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霞帔. 하피) 위에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을 적은 애틋함’이 절절히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운 아버지의 강을 건너면 조금은 산뜻한 작품들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강 같은 평화’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그대여 아무 걱정 말아요’ ‘포옹 합니다’ 같이 대형 천 위에 파란 글씨로 바느질한 작품은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작은 위로다.

작품 감상 중인 관람객
작품 감상 중인 관람객

다른 한쪽 벽에는 '한국가곡을 노래하다. 시, 음악을 입다' 공연 무대에 오른 가사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대체 이 많은 올챙이 같은 글씨들을 어떻게 썼을까. 하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마냥 즐겁다.

작가가 창작의 고통에도 봄날 나물 캐는 소녀처럼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피천득의 ‘오월’이라는 아크릴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가곡 가사를 적은 작품들
가곡 가사를 적은 작품들

오월이 가기 전에 모내기를 마친 들판의 연두 같은 글씨를 보러 가는 것은 어떨까. 분명 당신은 그리움의 연두로 물들고 번져나갈 것이다. 당신 삶 자체가 아직 오월이고 연두이니까.

@’오! 필승코리아’의 주인공 캘리그라퍼 단아 손영희 작가의 ‘글씨야 청산 가자’ 전시회는 5월 25일부터 6월 5일까지 2주 동안 대구광역시 수성아트피아 멀티아트홀에서 열린다.

<이모저모>

입구에서 관람객 맞는 손영희 작가(좌)
입구에서 관람객 맞는 손영희 작가(좌)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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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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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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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릴 작품. 피천득 '오월'
아크릴 작품. 피천득 '오월'
멀리 양평에서 온 관람객과 함께.. 멀리 비금도에서 오신 박종덕 산타님 고맙습니다~~
멀리 양평에서 온 관람객과 함께.. 멀리 비금도에서 오신 박종덕 산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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