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②] 캄캄한 하늘에 한 획을 긋다 ‘김영준 나전미술관’
[문화산책②] 캄캄한 하늘에 한 획을 긋다 ‘김영준 나전미술관’
  • 김현옥 기자
  • 승인 2021.06.20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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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작가
김영준 작가

[양평=경강일보] 김현옥 기자 = 김중식 시인은 “궤도를 이탈한 자가 자유롭다”고 노래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궤도를 이탈하기도 어렵거니와 대부분 다시 궤도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김영준 작가는 한때 여의도에서 잘 나가는 ‘증권맨’으로 살았다. 안전한 자본주의의 섬을 벗어나 나전칠기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쳇바퀴 같은 레일을 벗어나 맨발로 황무지를 걸었다. 궤도를 이탈해 우주에 한 획을 긋는 그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개울가 옆 2층 펜션을 개조해 2019년 7월 ‘김영준 나전미술관’으로 간판을 달았다. 꼬박 4개월 동안 4개의 방에 바다, 강, 땅, 하늘을 테마로 한 작품 40여 점을 걸었다.

‘바다’관에서는 옥빛 바닥에서 가오리, 복어, 돌고래, 새우 등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벽에는 수초가 넘실대는 대형 작품이 눈길을 끈다. ‘강’관은 자작나무숲 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사슴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풍경이다. 저 멀리 설산에서 흐르는 물이 모든 생명의 젖줄이다.

하늘관 작품
하늘관 작품

바닥이 황토색인 ‘땅’관은 온갖 붉은 꽃과 새를 새긴 대형 장롱이 시선을 압도한다. ‘하늘’관은 어둠 속에서 빛이 새어나오면서 달과 태양이 우주를 밝히는 형상이 이채롭다. 해와 달이 걸린 듯한 대형 십자가 형상은 강파이프에 일일이 수천 개의 작은 구멍을 내서 만들었다.

요즘은 한국에서만 생산되는 황칠과 나전을 융합한 작품을 새로이 연구하고 있다. 올 12월 한달 동안 뉴욕 K&P갤러리와 서울 인사동 일조원갤러리에서 동시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내년에는 홍콩문화원 전시를 계획 중이다.

연말 동시 개인전을 앞두고 새 작품구상에 대한 중압감을 단순함 속에서 찾았다. 아침에 테니스를 치고, 낮에는 작업을 한 후 저녁에는 산책을 하면서 아팠던 몸도 많이 좋아졌다. ‘농부의 마음으로 수확보다는 지금의 노동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으로 삶의 가치관도 변했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니 마음이 편해지고, 작품 결과도 훨씬 만족스럽다.

이사를 온 후 2년 동안 새로운 작품 구상에 몰두했다. 지금까지 작품들이 주로 평면적이었다면, 입체적이고 추상적인 분야로 영역을 확장할 생각이다. 직접 도예를 배워 도자기 위에 나전을 새기고 사진 작품과 콜라보도 기획하고 있다. 작년 가을 공예문화진흥원 전시회에 경희대 도예학과 학생들과 함께 만든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김영준나전미술관 전경
김영준나전미술관 전경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재작년 양평군에서 추진한 ‘찾아가는 문화투어’ 형식을 빌어 한달에 1~2일 예약제로 작업실을 개방할 방침이다. 또 나전칠기 작가를 키워서 세계 속에서 우리 문화예술의 미를 전파하는 일도 꿈꾸고 있다.

김영준 작가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는 분명하지만, 작가로서 자신을 성찰하고 좀 더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며 “다음 세대에서 나전칠기 분야에서 더 큰 획을 긋는 사람이 나오도록 작품활동과 교육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준 작가는 빌게이츠 X-BOX 디자인 및 주문제작(2008), 스티브잡스 i-Phone 핸드폰 케이스 제작(2009), 대한명인(옻칠분야) 선정(2010), 프란체스코 교황 의자 옻칠 제작(2015), 알리바바 만찬장 전시(2018) 등으로 유명하다. 이대 디자인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이모 저모>

바다관 바닥 장식
바다관 바닥 장식
'강'관 작품
'강'관 작품
'땅'관 작품
'땅'관 작품
테니스장 대형조명. 12개 달 작품 재료
테니스장 대형조명. 12개 달 작품 재료
작업 중인 김영준 작가
작업 중인 김영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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