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평인이다 ⑮] 23년째 전통연희 맥 잇는 ‘강상두레패 유진목 회장’
[나는 양평인이다 ⑮] 23년째 전통연희 맥 잇는 ‘강상두레패 유진목 회장’
  • 김현옥
  • 승인 2020.08.1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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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두레패 동상 앞에 선 유진목 회장
강상두레패 동상 앞에 선 유진목 회장

“더구더궁 더더궁~~” “00아, 손으로만 하지 말고 몸을 같이 움직여줘야 해”

15일 오전 10시 양평군 강상면민회관에서 세찬 장맛비를 뚫고 흥겨운 우리가락이 울려 퍼졌다. 강상두레패를 이끌고 있는 유진목(65) 회장이 양평중학교 학생 7명에게 세심하게 사물놀이를 지도하고 있었다. 경기도청소년예술제에 양평군 대표로 참가하는 학생들의 막바지 연습이 풍물소리와 땀으로 흥건했다.

강상면 교평1리 이장이기도 한 유 회장은 40대 초반이던 1997년 강상두레패를 만들어 23년 째 운영해 오고 있다. 사업 차 4개월 동안 청운면에 거주한 기간을 빼고는 60여 년을 꼬박 고향을 지키며 살았다. 단순히 지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칫 맥이 끊길 뻔한 양평의 전통연희를 그의 힘으로 살려냈다.

유진목 회장과 강상두레패와의 인연은 남사당패가 1957년 교평1리에 터를 잡은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남사당패는 1966년까지 약 10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강상두레패와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다. 유 회장의 기억 속에 강상두레패가 1960년대 초 양평군 농악대회에 나가서 우승해 배 앞에 송아지를 태우고 남한강을 건너며 뱃전에서 신명나게 풍물을 울리던 모습이 생생하다.

1950년대 강상두레패는 영좌 우덕명, 모가비 유범쾌, 상쇠 남운용, 소고 김재원, 무동 김덕수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 우덕명 선생은 어렸을 적 유 회장의 옆집(현재 뜰카페 자리)에 살았으며, 그곳에 각종 악기를 보관해뒀다. 남운용 선생은 남사당놀이로 국가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됐고, 소고 김재원 선생은 당시 무동을 맡아 훗날 사물놀이의 대가가 된 김덕수 씨의 부친이다.

나머지 한 분 모가비를 맡은 유범쾌 선생이 바로 유진목 회장의 선친이시다. 이처럼 어렸을 적부터 전통연희와 자연스레 어울린 유 회장은 구전으로 입 장단을 배웠다. 자진모리를 “땅도 땅도 내땅이다 조선 땅도 내땅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새마을회 4H 활동을 하면서 오락경연대회에 나가 꽹과리를 잡아본 것이 전부였다.

농사를 짓고 철물점을 운영하는 등 생업에 쫓기면서도 언젠가는 강상두레패의 명맥을 잇겠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마침내 1997년 6월 27일 김덕수 선생이 이끄는 한울림예술단 소속인 홍윤기 씨를 초빙해 정식으로 우리 가락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회비 2만원이 부담돼 회원 모집이 안되어 잠시 해체되는 시련도 맛봤다. 그러다 정성철, 안호근 씨 등과 다시 의기투합해 꺼져가는 양평 전통공연의 불씨를 살렸다.

소식을 들은 전 양평농협 이규태 조합장이 강상농협 지하실을 연습장소로 내줬다. 이후 대석리 방실농원, 강상면자율방범대 건물 등 여섯 군데를 옮겨 다니다 2002년부터 강상면민회관 1층에 자리를 잡았다. 2004년부터는 ‘사물광대’를 이끄는 장현진 대표로부터 한 달에 두 번 유료교습을 받고 있다. 회원들끼리 장단소리에 이견이 있을 때 아예 녹음을 해서 연습하는 열정으로 가득하다.

창단 첫해인 1997년 양평군 풍물대회에 나갔다가 꼴지를 했다. 절치부심, 다음 해부터 지금까지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99년에는 경기도대회 일반부 1등, 2000년 세계사물놀이대회 입상 등 그 실력을 맘껏 뽐냈다. 1998년부터 양평군청에서 전통문화육성사업으로 년 100만원 가량 지원을 받고 있으나, 강상두레패가 지역 전통문화 계승에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화계 안팎의 의견이다.

경기도청소년예술제 양평군 대표로 출전하는 양평중학교 학생들
경기도청소년예술제 양평군 대표로 출전하는 양평중학교 학생들

강상두레패는 기초반을 운영하는데 월 회비 3만원에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사물놀이 기초를 배울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중단 중이다. 지난해에는 양평고와 결연을 맺은 호주 고등학생 20명 등 40명이 체험교육을 하기도 했다. 사회적 기업으로도 등록해 올해부터 1960년대 강상두레패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실제 강상면사무소 앞 오르막길이 남사당 꼭두각시 인형놀이 공연 장소였고, 바로 옆 장수풍천장어 자리가 남사당패 단원들이 머물며 인형을 만들던 곳이라고 한다. 또 남사당놀이패가 1957년 잠시 해체됐다가 1964년 복원됐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공교롭게 이 시기 남사당패가 강상두레패와 함께 활동하던 때와 맞물려 있다.

이를 두고 유 회장은 “남사당패가 어떤 이유로든 어려운 시기 강상두레패가 따뜻하게 맞아주어서 이후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김덕수 선생도 양평군을 제2의 고향이라고 사석에서 말했다고 하니 역사적 고증이 더 필요한 부분인 듯 하다. 아무튼 이 시기 강상두레패는 인근 양평장은 물론 용두장, 양동장에 가서 1주일씩 공연을 하곤 했다고 유 회장은 회고했다.

유진목 회장의 가장 큰 바람은 이처럼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강상두레패를 대내외에 많이 알리는 일이다. 현재 강상면민회관을 교육관으로 쓰고 있는데, 좀 더 체계적인 교육과 공연을 위한 전용 공간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전이 예정돼 있는 강상면사무소와 부속건물들을 활용해 전통문화교육관을 만들자는 얘기다. 신화1리 예혼국악기(타악기), 화양1리 현악기 공방, 용문면 관악기 공방이 들어서고, 인근의 국악인들과 함께 양평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유 회장의 꿈이다..

유진목 회장은 “지난 23년 동안 양평군 전통연희의 명맥을 찾아서 잇고 있다는 것이 정말 보람 있고 자랑스럽다”면서 “남사당패와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웃다리농악 등 강상두레패의 전통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에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사진>

강상두레패 교육장소인 강상면민회관
강상두레패 교육장소인 강상면민회관
남사당놀이 인형극을 했던 장소(현재 강상면사무소 앞 내리막길)
남사당놀이 인형극을 했던 장소(현재 강상면사무소 앞 내리막길)
남사당놀이에 쓰인 인형을 만들던 집
남사당놀이에 쓰인 인형을 만들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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