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에서 원근법으로 가는 여정
비대칭에서 원근법으로 가는 여정
  • 김현옥
  • 승인 2020.10.0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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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졸업생 특별전시회...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전시회 포스터
전시회 포스터

2층 엘리베이터에 내리면 곰돌이가 문 옆에서 길을 안내해 준다. 20여 년 전 안동역에서 헤어졌던 꼬마인형 ‘패티’의 환생이다. 작가의 내면에는 쓸쓸한 역사에 두고 왔던 작은 곰이 목의 생채기처럼 남아있다. 어쩌면 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마음 속 그 역사, 그 벤치에 오롯이 남아있는 지워지지 않는 잔영 때문이리라.

소녀의 과하게 클로즈업한 오른쪽 귀걸이에는 알 수 없는 풍경들이 들어서 있다. 정릉초등학교 운동회 때 하늘을 날듯 공중부양하던 소녀는 자신의 몸이 비대칭임을 알았다. 서너 살 무렵 신발을 바꿔 신던 버릇도 몸에 맞지 않는 무언가를 맞추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이 비대칭이 내내 거슬렸던 소녀는 급기야 중학교 2학년 즈음, 자신의 한쪽 귀에 무거운 추를 내다 걸음으로써 화가로서의 삶을 속으로 커밍아웃하게 된다.

역시 소녀가 안방 커튼을 열고 창 밖에 있는 한 여인을 카메라에 담는다. 소녀는 악몽을 꾸다 깬 듯 공포에 가득 찬 얼굴이고, '은하철도999'의 메테르를 닮은 창 밖의 여자는 무표정한 듯 앉아있다. 사실 이 여인은 소녀의 어머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잠결에 일어나 커튼을 열면 거기 당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손수 만든 붉은색 케이크와 따뜻한 차를 어머니 생일 때 바친다.

알 수 없다.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하는지. 빨간 장막 너머 해는 지고 도시는 어둠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식탁에서 두 딸에게 와인을 따라주고 있다. 큰 아이는 이미 몇 잔 마신 듯 얼굴이 발개진 채 포만감에 젖어있고, 작은 아이는 팔에 힘을 줘 술잔을 받고 있다. 식탁 아래서는 개들이 자신들만의 카니발을 마치고 인간의 세계까지 넘보고 있다. 어머니는 술을 따르면서도 시선은 개들을 경계한다. 일상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선들과 실핏줄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공간을 이룬다.

눈이 내리는 도로를 소녀가 운전을 하고 있다. 이제 소녀가 아니다. 행선지가 분명해졌다. 운전대를 잡은 손은 단단하고, 전방을 주시하는 목은 단호하다. 창밖에 나타난 또 다른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자, 어느새 눈은 꽃비로 바뀌었다. 이제 질주만 남은 셈이다.

안동역 벤치에 남겨졌던 곰돌이는 고양이로 환생해 난롯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아도 이 작가에게서는 앞으로 방울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이 수시로 어긋나는 우리 몸을 교정하는 작업이니, 비대칭의 삶을 바로 잡으려는 작가의 시도가 얼마나 멀리 갈 지 지켜볼 일이다. 1차원적인 왜곡된 평면에서 속도의 원근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작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작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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