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사모 스케치④] “이만하면 됐다”며 깊어가는 가을을 ‘가만히 좋아하는’ 사람들
[양평시사모 스케치④] “이만하면 됐다”며 깊어가는 가을을 ‘가만히 좋아하는’ 사람들
  • 김현옥
  • 승인 2018.10.13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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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공방에서 열린 양평시사모 네 번째 모임
산새공방에서 열린 양평시사모 네 번째 모임

[용문면=김현옥] 시사모 네 번째 모임이 어제 용문면 연수2리 산새공방에서 있었습니다. 모임 전날부터 몽실 김동운 님은 단톡방에 “일주일이 지루하다” “빨리 보고 싶다”는 글을 올렸고, 이반석 님은 전화로 “시집을 구매 못했는데 어떡하냐”고 물어왔습니다. 이쯤 되면 중년 남정네들의 시바람이 단단히 났다고 볼 수 밖에 없겠죠.

이번 모임에는 새로 두 분이 더 오셨습니다. 멀리 서울 정릉에서 오신 손소영 님은 창대리가 고향이신데, 진작부터 오고 싶었다면서 먼 여행 길에 오르듯 호두과자를 한아름 사가지고 선물처럼 오셨습니다. 거기다 김동운 님이 가져온 귤과 초콜릿이 보태져 상차림이 완성됐습니다.

오늘도 커피는 이 집 바깥지기인 서학조 님이 손수 내리신 ‘에디오피아 예가체프 G1’. 저는 이게 맛과 향도 일품이지만 커피 이름이 무슨 클래식 곡명 같아 좋습니다. 그리고 연수1리에 사시는 김지숙 님은 산새공방이 꺼내놓은 비밀병기처럼 재미난 입담으로 자리를 환하게 했습니다.

호도과자와 초콜릿과 따끈한 커피
호도과자와 초콜릿과 따끈한 커피

동운 님은 요즘 시집을 항상 들고 다니시면서 시 읽기를 권하는 ‘시 전도사’가 되셨답니다. 반석 님은 소설, 수필, 시 순으로 가면서 술을 거르듯 문학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 같이 “보면 볼수록 새로운 느낌”이라는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 모임을 시작할 때 ‘사람이 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 읽기를 통해서 주변의 좋은 사람을 만나고, 모임에서 얻은 긍정적이 기운을 어느 곳에서든 맘껏 썼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죠. 그러기에 흔한 시낭송이나 시 쓰기 모임과는 결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산새공방 비밀병기’ 지숙 님 얘기를 좀 더 해야겠군요. 21년 교직에 계시다 몸이 좋지 않아 치유차 연수1리에 오게 됐답니다. 중학교 때부터 ‘숨이 가쁠 정도로 즐거운 인생’을 꿈꾸며 글 쓰는 게 좋아 국어 선생님이셨고요.

서울에서 오신 손소영 님. 멀리서 온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하십니다.
서울에서 오신 손소영 님. 멀리서 온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하십니다.

건축가이신 서학조 님과 인연이 돼 바람이었던 ‘처마가 있는 집’에서 해지는 풍경과 별을 보면서 건강도 회복했다고 하십니다.(박수 짝짝짝~).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시가 ‘농축된 위안’을 줬다고 하시는 걸 보면, 편안한 집에 아름다운 시가 처방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학조 님은 KTX광명역사, 목동아이스링크,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등을 설계하신 우리나라 건축가 중 손에 꼽으시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문학보다는 전공 책만 봐왔지만, 이번 모임에 함께 하면서 시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원정을 가셨답니다. 좋아하는 시는 김춘수의 ‘꽃’이랍니다.

어쩌다 첫사랑 얘기가 나와서 윤제림의 ‘사랑을 놓치다’를 읽고, 동운 님의 중학시절 애틋한 짝사랑 얘기도 들었습니다. 여기에 반석 님도 영어선생님을 흠모했던 추억을 재미나게 풀어내 웃음꽃이 활짝 피었답니다.

산새공방 비밀병기 김지숙 님(등 보이는 회색옷 입으신 분)으로 한결 웃음이 가득한 자리였습니다
'산새공방 비밀병기' 김지숙 님(등 보이는 연보라옷 입으신 분)으로 한결 웃음이 가득한 자리였습니다

김사인 시인의 <가만히 좋아하는>도 이처럼 표 내지 않고 은근히 사근사근 주변의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이야기 입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조용한 일’)처럼 말이죠.

사는 게 뭐 있겠습니까. 지금 주변의 것들에 고마워하고, 오늘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며, 이성선 시인의 ‘윤제림’이란 재미난 시를 들으며 얼굴에 웃음을 띠는 것이면 된 거죠. 마니 묵었다 아이가, 엔간히 먹어라 잉~을 거쳐 ‘이만하면 됐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즐겁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즐겁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먹자고 하는 일. 모일 때마다 차 값으로 1만원을 내서 차 값을 제하고 남은 돈을 모아 한 달에 한번 정도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총무는 만장일치로 어제 먼저 가신 한광식 님이 선정되셨습니다 ㅎㅎ.

여운이 남은 분들은 정미조 선배의 신곡 ‘귀로’를 들으면서 하나 둘 새들의 집에서 사람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주는 이윤학 시인의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를 읽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발 헛디디지 마시고, 낙엽 위를 사뿐사뿐 걷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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