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사모 스케치⑤]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시간들
[양평시사모 스케치⑤]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시간들
  • 김현옥
  • 승인 2018.10.19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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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한 분도 빠짐 없이 산새공방으로 달려오신 아홉 분들
지난 주에 이어 한 분도 빠짐 없이 산새공방으로 달려오신 아홉 분들

[용문면=김현옥] 시사모 다섯 번째 모임이 오늘도 산새공방에서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들 일들이 있어서 조금 늦게 모였습니다. 기다리면서 혹시 누가 새로 오는 손님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잠시 했습니다. 그보다 저번 모임에 나오셨던 아홉 분이 모두 나오셨다는 기쁨이 컸습니다.

이번에도 손소영님은 자동차 매장을 후배에게 떠넘기고 서울에서 단숨에 달려오셨습니다. 맛있는 마늘빵에 과자를 듬뿍 안고서요. 김지숙 님도 알고보니 송파구에서 오셨다고 하네요. 지숙 님은 11월까지 읽을 시집을 잔뜩 주문해놓고 머리맡에 두고 자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김동운 님, 손소영 님, 손영희 님(왼쪽부터)
김동운 님, 손소영 님, 손영희 님(왼쪽부터)

이윤학 시인의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를 두고 “재밌다”부터 “어둡다, 어렵다”에 이르기까지 반응은 제 각각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상실의 고통을 재미있게 잘 표현했다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손을 두고 손을 찾는 ‘손’이란 시와 ‘양배추 수확’을 읽으며 모두 웃음을 지었습니다.

또 ‘꼭지들’ ‘이미지’를 읽으면서는 유년시절의 상실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했습니다. 지숙 님은 어렸을 적 사촌동생과 부산에서 보낸 일을 떠올리면서 ‘가슴이 네모처럼 뻥 뚫린’ 감정을 얘기했습니다.

과자와 커피에 손이 가듯 아픈 곳에도 자꾸 손이 갑니다
과자와 커피에 손이 가듯 아픈 곳에도 자꾸 손이 갑니다

손영희 님도 학창시절 친구와 같이 주웠던 까만돌 하얀돌을 아직도 보관 중인데, 정작 친구는 그 일을 기억 못한 데서 상실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어렸을 적 어머니가 통금 지나자 마자 새벽에 목욕탕엘 데려가시곤 했는데, ‘살아계셨다면 뜨거운 찜질방에 모실 텐데’ 하는 따스한 아쉬움으로 위안을 받았습니다.

서학조 님은 “이윤학 시인의 처가가 경주가 아니냐”고 하면서 자신도 그곳이 고향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양복점을 하시던 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보내놓고,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교복 없이 지내자, 직접 만드신 검은 교복을 보따리에 싸서 누나에게 보낸 사연을 얘기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행복한 한광식 님(왼쪽), 그리고 저... 앗, 제가 이렇게 느끼하게 생겼나요 ㅠㅠ
행복한 한광식 님(왼쪽), 그리고 저... 앗, 제가 이렇게 느끼하게 생겼나요 ㅠㅠ

1톤 트럭을 몰고 오신 ‘단월면의 꾀꼬리’ 신민영 님은 이윤학 시인을 더 알고 싶어서 도서관에 가서 <그림자를 마시다>를 찾아 읽었답니다. 거기 ‘단풍잎 장판’이란 시를 낭송했는데, 자연스레 손택수의 ‘단풍나무 빤스’, 고두현의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까지 시단풍으로 공방이 붉게 물들어버렸습니다. 이를 어쩌누, 이 분위기 어쩔 거야!!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는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유년시절 뻥 뚫린 가슴, 맨홀에 빠질뻔한 아찔한 기억, 교복을 지어 보낸 아버지의 두툼한 손, 조약돌을 고르던 친구의 옆모습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뒷태가 몹시 아름다운 이반석 총무님
뒷태가 몹시 아름다운 이반석 총무님

“얼마나 추웠을까”하며 돋보기로 타인에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이 어쩌면 시사모 모임의 출발점입니다. 그러기에 맛있는 빵과 과자, 커피에 손이 가듯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일입니다.

이윤학 시인의 ‘아버지’를 읽으면서 다음주에 함께 할 문태준 시인의 <맨발>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문태준은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하는 시인이거든요. 아무튼 끝으로 모두가 좋았다고 손을 꼽은 이윤학의 ‘첫사랑’을 읊으면서 오늘 모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조금 따뜻해졌나요? ㅎ
조금 따뜻해졌나요? ㅎ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얼마 전 이윤학 시인과 제가 페이스북 친구가 됐는데, 아마 가평에 사시는 모양입니다. 가까운 곳에 계시니 기회가 되면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응해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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