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면=김현옥] 27일 오후 5시 지평면 수곡리 자그마한 시골집 갤러리 ‘백하헌’(관장 정혜경)에서 정혜신&이명수의 <당신이 옳다> 북콘서트가 열렸습니다.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자 하나 둘 시골집 난롯가로 모여들더니 어느덧 서른 여명이 자리를 꽉 채웠습니다. 밖에서 집을 보면 마치 샛노란 연등이 걸린 듯 하고,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서른 송이 연꽃이 얼른 봉우리를 밀어 올리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걸어와서 연꽃으로 앉거나 눕는 곳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나이를 떠나 수 십 년 직립의 삶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드러눕고 싶을 때,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할 때, 용기를 내서 옆사람의 손을 잡고 싶을 때, 고단한 목을 숙이고 연(練)의 뿌리를 볼 수 있는 곳이 백하헌입니다.
말이 북콘서트지 동네 마실 오듯 그 연으로 차린 따뜻한 한끼 밥을 먹었습니다. 목욕탕에서 혜신 선생님 등을 민 기억을 가지고 오신 개군면 사시는 분부터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멀리 충북 영동에서 오신 분까지 저마다의 사연으로 지은 연(練)밥 맛있게 나눴습니다.
이렇게 인연으로 차려진 연밭에 혜신명수 님이 가래떡과 책을 들고 오셨습니다. 얼추 손님이 다 오자 이 집 쥔장인 혜경궁 정씨 마마님께서 새벽부터 만든 녹두전과 꼬막비빔밥을 내놨습니다. 따끈한 밥에 생들기름을 뿌린 후 양념장(진간장+조선간장)과 깨소금으로 버무린 다음, 싱싱한 미나리와 제철 벌교꼬막을 투척하니 궁중에서만 전해오는 ‘마마님표 꼬막비빔밥’이 완성됐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얘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직장에서 풀지 못한 응어리,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짐을 덜고 소풍가는 마음으로, 집밥을 먹는 기분, 25년 전 오빠에게 상처를 준 데 대한 뒤늦은 사과, 교직 31년이 남긴 피폐함, 친정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온전하게 듣고 싶어서 등 저마다 사연이 많았습니다.
이에 정혜신 님은 “모든 존재가 치유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공감은 존재에게 주목하면서 ‘왜’라고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무차별적으로 감정을 내어주는 ‘공감의 코스프레’ 여서는 안되고, ‘공감의 종착역’인 ‘나’에게 집중해야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명수 님도 죽음의 기로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 후 살게 됐다고 합니다. 가족이 와서 발을 만지며 어루만져주는 심리적 연결이 치명적인 상황에서 통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줬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심리적 CPR(심폐소생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두 분 모두 공감의 과녁은 정확하게 맞아야 제대로 작동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과녁은 다름 아닌 마음에 집중하는 일이고, 공감을 받게 되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죠. 거기서 다시 한번 공감의 경계선에서 갈등하게 되면 ‘나’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혜경 관장은 “이웃 정혜신 이명수 선생님을 모셔놓고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면서 “시골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차가운 몸을 구들에 녹이며 친정 어머니가 차린 밥상을 내놓는 일로 사람 사이 ‘공감의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갔으면 다행”이라고 겸손해했습니다.
네, 좁은 골목길도 꽁꽁 언 연못도 마당 자갈도 밤하늘 별도 영하의 추위도 모두 옳습니다. 혹한의 추위를 달려와 뜨거운 호흡 내어준 당신의 심장과 갈비뼈도 옳습니다. 갈비뼈 사이 격한 흐느낌과 울림도 옳습니다. 맞아요, 당신이 옳습니다.
당신이 옳으니 오늘부터라도 당신을 위해서 내 마음을 더 들여다보도록 ‘공감의 도르레’를 우물 속으로 내리겠습니다. 봄이 오면 퍼 올릴 공감의 샘물에 당신 얼굴 비춰보겠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봄이 오면 백하헌 마마님전에서 또 한번 뭉칠까요^^
엄지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