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사모 스케치 17] 말뚝에 매여 동심원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 ‘소’
[양평시사모 스케치 17] 말뚝에 매여 동심원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 ‘소’
  • 김현옥
  • 승인 2019.02.21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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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에 월산리로 이사 오신 주혜정(오른쪽) 님이 오셔서 모임이 한층 생기발랄해졌습니다~
한달 전에 월산리로 이사 오신 주혜정(오른쪽) 님이 오셔서 모임이 한층 생기발랄해졌습니다~

[용문면=김현옥] 양평시사모 열일곱 번째 모임은 김기택 시인의 <소>와 함께 했습니다. 소는 가축 중에서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심우도’에 나오는 소처럼 깨달음으로 가는 성스러운 존재이기도 하죠.

오늘은 이반석 님 추천으로 월산1리 월산저수지 근처에 1개월 전에 이사오신 주혜정 님 부부가 함께 오셨습니다. 주말농사를 지으시다가 아예 정착을 하셨다는데요, 겸손과 열정을 가지신 분들이 참여하셔서 모임이 활기에 찼습니다.

이매화 님은 이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요, 마흔 넘어서 매화라는 이름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참 이쁜 이름입니다. 유종인 시인의 ‘흐린 날의 화조도’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제가 먼저 ‘수화’라는 시를 읽고 “말을 할 수 없는 고통이 꼭 소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소는 눈만 껌벅거리고, 사람은 허공에 손짓만 하게 되는 거죠. 한광식 님이 표제시 ‘소’를 읽었는데 농협에 다니던 시절,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를 보고서 고기를 잘 먹지 못하게 됐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신 한광식 님이 '소'를 읽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신 한광식 님이 '소'를 읽고 있습니다

고기 얘기가 나와서 며칠 전 양평녹색당에서 상영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로 화제를 잠시 옮겼다가, 주혜정 님이 ‘아줌마가 된 소녀를 위하여’를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동네 여동생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짧은 시간은 아마 시계초침이 멈추게 하는 마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매화 님이 ‘무단횡단’을 읽고 “양평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면서 “나도 나이가 들고 무릎에 신호가 오기 시작하면서 노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말합니다. 요즘 유투브에 흔히 ‘고라니’라고 부르며 도로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을 비웃기도 하는데, 항상 조심스런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시인은 또 이렇게 밖에조차 나오지 못하는 노인의 삶을 ‘귤’이라는 시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어두운 방 안에 혼자 놓여 있다//며칠 전에 딸이 사놓고 간 귤/며칠 동안 아무도 까먹지 않은 귤/먼지가 내려앉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귤/움직이지 않으면서 조금씩 작아지는 귤/작아지느라 몸속에서 맹렬하게 움직이는 귤/작아진 만큼 쭈그러져 주름이 생기는 귤/썩아가는 주스를 주름진 가죽으로 끈질기게 막고 있는 귤//어두운 방 안에 귤 놓여 있다”

계절에 맞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곡해주시는 서학조 님.
계절에 맞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곡해주시는 서학조 님.

사실 말뚝에 묶여서 동심원을 그리며 사는 점에서 사람이나 소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 다하지 못하고 꾹꾹 참으며 추운 날 말뚝처럼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밀리는 전동차 안에서 손을 헤 저으며 이리저리 눈만 껌벅거리는 삶이 소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다들 저녁 일정이 있어서 다른 때보다 일찍 시를 읽고 마쳐야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서학조 님이 틀어준 ‘빈필하모닉 2019 신년음악회’ 앨범을 들으면서 마무리 했습니다. 시사모 18번째 모임은 3월 6일 나희덕 시인의 ‘사라진 손바닥’을 읽습니다.

추운 겨울을 배웅하고 봄을 맞이하게 해주셔서 다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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