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편지 #18] 가장 아름다운 인연의 ‘꼭지들'
[자서전 편지 #18] 가장 아름다운 인연의 ‘꼭지들'
  • 김현옥 기자
  • 승인 2021.11.02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 운전을 하고 가는데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가족과 이별을 한 분들의 사연을 진행자가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수녀님이신 진행자가 부모님부터 형제 자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들려주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흘리다가 어머니를 잃은 어떤 사연을 듣고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마흔이 넘은 사연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자신을 낳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 빛바랜 사진으로만 간직하고 있었겠지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자신이 어머니 나이가 되어 딸을 낳고 보니 그 그리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겠지요. 그러면서 그 분이 이선희의 '인연'이란 노래를 신청해서 듣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없이 자라면서 그 분이 느꼈을 아픔이 자동차 와이퍼를 잘못 건드린듯 스쳐지나갔습니다.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내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먼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거부할 수 없는 엄마와 딸의 인연이고, 태어남이 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인데 말입니다. 그 어머님도 천국에서 따님을 다시 만나면 맘껏 가슴에 품어주겠죠.


꼭지들

                                이윤학


이파리 하나 붙어 있지 않은 감나무 가지에
무슨 흉터마냥 꼭지들이 붙어 있다

먹성 좋은 열매들의 입이
실컷 빨아먹은 감나무의 젖꼭지

세차게 흔드는 가지를
떠나지 않는 젖꼭지들

나무는,
아무도 만지지 않는
쪼그라든 젖무덤들을
흔들어댄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저 짝사랑의 흔적들을


거리에 낙엽들이 하나 둘 쌓여가는 계절입니다. 모든 떨어진 것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하나씩 달고 살아갑니다. 또 상처를 떠나보낸 것들도 저마다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삽니다. 그 둘 사이를 연결해주는 것이 그리움 뿌리와 위로의 가지입니다. 눈물이 적셔진 뿌리에 곧 새파란 가지가 돋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