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린 배달원의 죽음과 사회적 무관심
[사설] 어린 배달원의 죽음과 사회적 무관심
  • 김현옥
  • 승인 2019.10.27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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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불면 옥수수도 어린 것들 보호하려고 서로 손을 잡고 병풍처럼 서있다
비바람이 불면 옥수수도 어린 것들 보호하려고 서로 손을 잡고 병풍처럼 서있다

지난 22일 양평읍 한 대형마트 앞에서 고등학교 남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좌회전하는 차에 치어 숨졌다. 가해차량은 마트에 들어가기 위해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생은 119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10월에 태어난 이 학생은 만 17세의 나이에 차가운 도로 위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다. 양평지역 SNS 커뮤니티에는 그를 추모하는 글과 영상이 다수 올라왔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 시간 나는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기에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중견 탤런트 차량에 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포털 사이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부분 상황 파악도 없이 “철없는 고등학생이 과속하다 사고를 냈다”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 합의금을 운운하면서 유가족을 우롱하는 댓글에 가해 운전자는 “악성비방을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양평지역 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마치 딴 나라 사람의 죽음을 대하듯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반응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어느 누구 하나 학생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한 사진을 올린 사람이 없었다. 평소에는 중계하듯 일상 속 자질구레한 것들을 올리던 정치인들이 말이다.

첫째, 이번 사건은 평소 교통량이 많은 마트로 진입하는 좌회전 신호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느끼고 신호등 설치를 경찰서 등에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 고갯마루에서 내려오는 내리막길에 과속방지턱 외에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다. 평소에 대형트럭들도 과속을 하기 일쑤다. 당연히 경찰서와 군청을 찾아가 재발 방지책을 따져 물어야 한다.

둘째, 배달업주나 업체에서 어린 소년을 과속으로 내몬 정황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남들 다 즐겁게 저녁을 먹을 시간에 ‘1분이라도 더 빨리 달려야 했던’ 구조적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셋째, 그 학생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손 가정이라고 한다. 아무런 걱정 없이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어른이 돼버린 사진 속 소년의 맑은 눈망울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우리 어른들 책임이기도 하다. 행여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가동되었는지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부분이다.

넷째, 앞서 말한 대로 포털에 도가 넘은 댓글로 유가족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지역사회가 나서서 엄중 경고를 하고 대처를 해야 한다. 남의 고통을 즐기면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악성댓글에 대한 적절한 조치로 피해자와 유가족의 상처 입은 영혼을 위로해 줘야 한다.

이런 일들을 하라고 선거에서 지방자치 의원을 뽑아 준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이 지역에서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다. 언제까지 페이스북에 입으로만 떠벌리는 ‘키보드 정치’로 잠깐의 환심을 사려하는가.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어가는 일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고, “시민들이 내는 후원금이 아깝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책위가 꾸려지면 기꺼이 동참하는 언론도 많을 것이다. 그런 노력을 통해 아이들이 사고 위험이 없는 도로를 걷고, 돈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게 가동되고, 익명의 가해자로부터 2차 3차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양평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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