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토종작물은 양평 백년대계 출발점”
[인터뷰]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토종작물은 양평 백년대계 출발점”
  • 김현옥 기자
  • 승인 2022.02.18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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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양평=경강일보] 김현옥 기자 = 한때 잘 나가는 문화기획자였다. 인디음악 제작자로 10여 장의 음반을 발매했고, 대중문화비평지 <리뷰> 편집장으로도 나름 이름을 알렸다. 문화예술아카데미 ‘풀로 엮은 집’에서 대중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진중권, 강헌 등과 인연을 맺었다.

고양시 벽제에 있는 기독교계 수녀원 동광원에 갔다가 난생 처음 농사라는 것을 접해봤다. 고향은 전남 나주이지만 다섯 살 때 서울로 와서 벼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다. 거기다 영문학을 전공했으니 그가 농사꾼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양평군 청운면에 들어와 토종벼 채종 및 보급 일을 하고 있는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얘기다.

동광원에서 농약을 안 쓰고 거름을 순환하는 생태 농법을 배웠으니 당연히 농사는 그렇게 짓는 걸로만 알았다. 처음에는 다섯 평 텃밭을 일구다가 뜻 맞는 도시농부 4명이 모여 벽제 근처에 200평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인근에서 놀리는 땅을 지어달라는 요청이 많아지면서 농사 규모도 커졌다. 7년 정도 농사를 짓다 보니 고양시 근처 13곳에 1만 5천 평으로 늘었다.

도시농부들을 모아 자급공동체, 작물공동체를 구성해 그 많은 땅을 일궜다. 마늘, 밀, 감자, 생강, 콩, 고추 등을 재배해 메주와 고춧가루를 만들어 구성원들과 같이 나눴다. 그러다가 2010년 정식으로 4,500평을 임대해 우보농장을 설립한 후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벽제와 양평 포함 4,000여 평 논에서 토종벼를 생산하고 있다.

5평 밭에 손으로 논을 만들어서 볍씨 30종을 심은 것이 토종벼 농사의 출발점이다. 그가 볍씨에 주목한 것은 수 천년 이어온 농경민족의 토종 DNA를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계농으로 지어지는 개량종의 원종이 모두 일본종이라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100년 전 만해도 1,450여 종의 토종벼가 우리나라 들녘에서 자랐다. 유전적, 개성적으로 훌륭한 품종이 전국적으로 많았다는 얘기다.

현재 유전자원센터에서 보유한 토종벼 종자가 대략 450여 종인데, 그가 10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재작년까지 250 종을 채종했다. 양평에 와서 12개 읍면 15명의 농부에게 검증이 된 25종을 농가당 2개 품종씩 나눠줬다. 동시에 청운면 가현리 8개 농가 1만6천여 평 논에 100여 종을 연구목적으로 테마별로 심었다.

양평에서 채종한 토종벼 씨앗들
양평에서 채종한 토종벼 씨앗들

이를 테면 동물 이름으로 된 20여 품종, 북한 품종 16종, 전국 8도 품종, 유색미 품종, 양평에서 재배된 품종 등이 그것이다. 또 용도별로 대궐찰(대궐에서 쓰던 쌀), 가위찰(한가위용), 귀도(제삿상 쌀), 불도(공양미용), 천주도(교인 자급용) 등으로 나눠 재배 중이다. 이런 실험을 통해 토종벼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농민 수익과 토종씨앗 보존을 위해 양평에 온 것이다.

현재까지 350여 종 가량 채종 중이니 앞으로 100여 종만 더 하면 450여 종의 토종벼 종자를 복원하게 되는 셈이다. 단순히 복원에 그치지 않고 수확한 벼를 이용해 막걸리, 초콜릿(자광도), 아이스크림 젤라또(궐나도), 시루떡(대관도) 등을 만들어 호평을 받고 있다. 또 생산한 쌀을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에 1kg 당 1만5천 원에 납품 중이다. 400g 소포장 쌀이 7천 원이니 부가가치가 높다.

2019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 방한 시 청와대 만찬에서 독도새우와 함께 우보농장의 토종쌀 4가지 품종이 밥상에 오르기도 했다. 평안남도 북흑조, 함경북도 흑갱, 김포 자광도, 충북 흑미를 혼합한 밥이 만찬에 나왔다. 이를 통해 지역별 품종은 다양해도 ‘우리는 한민족이고, 다 같은 쌀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했다.

이렇게 역사적, 생태적, 환경적, 경제적으로 가치가 큰 토종벼 보급 사업이 양평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양평군의회 본회의에서 약 58억원의 토종자원 활성화 목적 예산 중 44억원 이상이 삭감됐다. 구체적으론 청운면 가현리 토종자원 클러스터(집적단지) 부지매입(40억5,500만원), 토종자원 거점단지 관리센터 건립(1억5,150만원), 토종자원 가공상품 개발 지원(4,800만원) 등이다.

양평군의원들이 내민 삭감 근거는 “1년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후평가 등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고, ‘중차대한’ 사업에 대해선 충분히 검토해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항의하는 토종자원 거점단지가 들어선 청운면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도 군의원들은 토종벼의 경제성 분석 미비, 지자체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사업 진행 필요성 등을 예산 삭감의 근거로 들었다.

양평밀 채종밭
양평참밀 채종밭

하지만 토종씨앗을 수집·보존하고 유통체계 구축 기반 조성에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볼멘 목소리다. 이에 양평군의회 측은 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시 토종자원 관련 예산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치적 이유로 예산을 삭감했다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이 대표 역시 군의회의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군의회에서 단 한번도 토종자원 사업의 주 실행자인 자신과 관련 대화를 진지하게 나눈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 연구하고 실험하는 단계에서 지난해 첫 수확이 나온 상태인데, 1년 만에 결과를 내놓으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국가가 할 일을 왜 양평이 하냐”는 논리도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제대로 된 토종벼 연구가 없었던 것은 정부에서 일본종을 보급하는 ‘편한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국가가 하지 못할 일을 양평에서 하는 데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주장이다.

종자독립과 종자주권을 찾기 위해서는 종자선택권이 국가나 지자체가 아닌 농부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지론이다. 땅과 밥상, 생명을 살리는 길은 다품종 소량 생산을 통해서 토종벼 확산과 보존을 위한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10년 동안 350종을 흙과 씨름하며 채종했는데, 나머지 100여 종의 연구와 실험이 양평에서 꽃 피우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시도들이 실제 큰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양평군민을 제외하고도 약 1,500여 명의 외지 사람들이 청운면 토종자원 클러스트를 찾았다. 그들이 직접 모찌기, 벼심기, 수확, 탈곡, 탈망, 건조 작업을 같이 했다. 스페인에서 100명이 와서 2박3일간 머물면서 최고의 체험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여기에 양평군 풍물패 100여 명이 참여해 벼베기 때 양평문화재단과 공동으로 공연을 펼쳤다. 두 달 동안 이어진 벼베기 행사에 지역 주민들은 모처럼 “사람 사는 청운면, 흥이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토종작물과 연계한 청년창업 교육 프로그램까지 준비해 놓았던 것을 예산삭감으로 중단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양평군 청운면 토종벼전시관
양평군 청운면 토종벼전시관

이근이 대표는 “프리미엄 토종벼 계약재배를 통해 양평형 토종작물 농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며 “안정적인 농가소득은 물론 체험관광으로 인한 지역경제의 선순환 효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토종벼에는 수 천년 이어온 한민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양평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토종벼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인’(米人) 시사회가 오는 21일(월) 오후 3시 30분 서울 용산CGV 2관에서 열린다.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정식 개봉은 24일(목)부터다.

<토종자원 클러스터 이모저모>

클러스터 입구
멧돼지 찰벼
전시관 내부
양평 토종마늘 채종밭
전국에서 채종한 토종벼 볏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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